<노변의 피크닉>: 테크놀로지, 국가, 계급에 대한 우화

아르카디 스트루가츠키, 보리스 스투르가츠키, 이보석 옮김, <노변의 피크닉>, 현대문학사, 2017.

원작 출판 연도(소비에트연방) 1972. 검열본

검열본이 아닌 원본 복원 출간 보리스 스투르가츠키, 회상록 <지난 일들에 대하여>, 2003.(2012년 시카고리뷰프레스 영역본 발간)

외계인이 갑자기 지구에 잠시 왔다 떠났다. 지구의 어느 누구도 이들이 온 목적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구인들을 더욱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외계인들이 들렸던 여섯 곳에 남은 흔적들이었다. 그 ‘구역’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외계 물체들이 나뒹굴었고, 구역 전체에는 이해 할 수 없는 중력과 대기 현상들이 지속되었다.

이 구역의 외계 물체들을 대하는 지구인들의 태도와 목적은 너무도 달랐다. 과학자들에게는 현 단계 과학의 한계와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올 사건으로, 군대나 ‘국제외계문제연구소’와 같은 정부에게는 신기술 개발과 무기에 활용할 자원으로 여겨졌다. 이들만이 아니었다. 국가가 군대를 동원하여 폐쇄한 이 구역에 잠입하여 훔친 외계 물체를 암거래 시장에서 거래하는 이들, ‘스토커’(stalker)가 등장했다. 이 소설은 이렇게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구역과 외계 물체를 두고 벌이는 다툼과 갈등, 서로 다른 욕망의 표출과 붕괴를 그려내고 있다. 아마도 외계인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몇 안 되는 SF소설 중 하나일 것이다.

1972년, 이 소설이 전례 없는 정부의 검열을 거쳐 겨우 초판이 출간되었던 때는 미소 냉전시대의 테크놀로지 전쟁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특히 위성과 로켓, 그리고 달착륙으로 대표되는 ‘스타워즈’가 그 서막을 알렸던 때이기도 하다.

흔히 첨단 테크놀로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블랙박스’로 여겨진다. 냉전 시기, 표면상 우주 여행을 목표로 한다는 테크놀로지는 블랙박스였을 뿐 아니라 국가 관료에 의해 통제되는 접근 불가능한 ‘구역’이었다. 이러한 구역을 대하는 계급과 계층의 이해관계는 <노변의 피크닉>에서처럼 너무도 달랐다. 테크놀로지 개발의 핵심에 있는 이들은 순수한 과학의 열정만으로 움직인다는 자기 기만으로 냉전체제의 경쟁에 이용당할 뿐이었다. 테크놀로지 개발에 관심은 있었지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이들에게 이 기술은 ‘스토커’처럼 생계를 위한 기만과 협잡의 소재였다. 그러나 어떤 계급과 계층도, 심지어는 국가조차도 이러한 기술이 전 인류에 가져올 결과는 확정할 수 없었고, 장담할 수 없었다.

<노변의 피크닉>에 나오는 목적을 알 수 없는 외계인의 방문, 그리고 원리는 커녕 용도조차 알 수 없는 외계 물질은 냉전이라는 당대의 배경을 넘어 국가가 통제하는 테크놀로지 관료제의 본질을 보여주는 소재로 쓰였다. 주목할 부분은 이런 테크놀로지의 희생자들이다. 테크놀로지의 개발로 인해 이익을 얻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스토커들은 새롭고 알 수 없는 테크놀로지를 자신의 생계 수단으로 삼지만, 그 생계 수단은 자신들의 삶을 갉아먹는 심연일 뿐이었다.

이 소설이 1972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넘어 디지털과 네트워크,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오늘날에도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은 테크놀로지, 국가, 그리고 계급에 대한 우화로서일 것이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의 잠재성은 어떻게 한국에서 표출되고 있는가. 새로운 시장에 대한 가능성으로 투자를 요구하는 과학자와 기업인들, 화폐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국가 관료들, 그리고 블록체인에 대한 어떤 이해도 없이 오직 이를 소액의 자산을 불릴 투기판으로 보는 사람들에게서 1972년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비유인가.

 

[판사코인 사태로 본 인터넷 여론]청와대 청원사이트 얼마나 파급력이 있나?

최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고법의 집행유예 판결에 대해 시민들의 저항이 거세다.

이 저항을 이끌고 있는 핵심은 바로, 청와대 청원 사이트이다. 이른바 “판사코인”으로 불리우면서 사람들은 “떡상 가즈아~”를 외치며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이 청원은 하루만에 10만을 돌파하는가 하면 이미 20만명인 답변 인원수를 돌파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언론사들은 이 사실을 다양한 관점에서 전하고 있어, 이슈의 이니셔티브를 청와대 청원이 장악한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질문한가지 해보자.

청와대가 사법부에 대한 그다지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며, 이는 대한민국에서 정상적인 초중고 교육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이들은 청와대에 청원을 올린 것일까?

그만큼 청와대 청원의 파급력이 강력하다는 의미이다. 하여 시밀러 웹이라는 트레픽 측정 사이트를 통해 실제 청와대 청원 사이트의 파급력이 어느정도일지 확인해보고자 한다.

청와대 청원 사이트의 트레픽

청와대 웹 사이트의 트레픽은 월평균 487만 수준이며,  중복을 제거한 방문자수는 226만명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평균 2분 16초를 머무르며, 인당 페이지뷰는 3.71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나 트레픽중 84.83%가 모바일 트레픽으로 보인다.

주목해 볼 것은 방문 경로인데, 검색보다 리퍼럴 페이지로부터의 방문 비중이 매우 높다는 거다. 무려 39.29%를 차지하고 있다.

리퍼럴 페이지에서 방문하는 빈도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인데, 3개월 동안 총 87만명이 리퍼럴 페이지로부터 방문하였다.

주요 리퍼러 페이지는 커뮤니티 들로서, 클리앙, 오유, 일베, 뽐뿌, 딴지등의 커뮤니티에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청와대 청원 사이트에 유입되는 사람들은 이들 커뮤니티에서 공유된 청원의 내용을 보고 페이지로 유입된다고 볼 수 있다.

소셜 미디어는 주로 트위터로 부터 유입되고 있다.

검색의 유입은 직접 청와대 청원을 검색하여 진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분석결과의 의미

분석결과를 보자면,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검색을 통해 접근하여 청원을 올리고 그 청원을 성사시키기 위해 각 커뮤니티에 공유한다.  또한 SNS 미디어 중 트위터의 활용빈도가 높은 것은 weak tie 형태의 SNS인 트위터가 확산에 더 유리하기 때문임을 짐작할 수 있다.

커뮤니티에 공유된 이슈들은 다시 청와대 청원 사이트의 리퍼러 페이지에서 보듯 재 유입의 기재가 된다. 또한 이 이슈들은 각 언론사들이 기사화하여 포털, 언론사 홈페이지등에 실리게 된다. 현재 네이버를 기준으로 청와대 청원으로 검색하였을 경우 기사수는 2만 3천여건에 달한다. 내용도 시사성 이슈뿐 아니라, 노동, 환경, 젠더의 이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네이버 청와대 청원 검색결과

또한 리퍼럴 페이지의 다수를 차지하는 커뮤니티의 성향들을 보건데, 이미 이 곳은 각기 다른 사회적 이슈를 녹여 대립하는 일종의 용광로 혹은 전쟁터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타 사이트와의 비교

이른바 아젠다를 설정하는 사이트들은 여러 군데가 있다.

그중에 조선일보,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의 온라인 뉴스 사이트들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언론사 사이트와 비교를 해 보았다. 트레픽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그러나 청와대 사이트의 인당 PV는 타 사이트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나 유의해서 볼 것은 접근 채널에 관한 것인데, 청와대 사이트가 리퍼럴 페이지 비율이 월등히 높다. 언론사들은 주요 유입수단은 검색을 통한 유입니다.

소셜 미디어 트레픽도 차이가 나는데, 다른 미디어사들이 페이스북의 비중이 높은 반면, 청와대 사이트는 유독 트위터의 비중이 더 높다. 페이스북은 전형적인 strong tie 소셜 미디어로 이 비중이 높다는 것은, 일종의 성향이라는게 있어 유사한 성향의 친구들이 공유하는 뉴스를 통해 접근이 이뤄지는 경향이 더 크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소리굽쇠와 공명현상

모든 미디어나 온라인 이슈는 발화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트위터가 국내에서 사용자가 급감했음에도 명맥을 유지할 수 있던 계기는 셀럽들의 트윗이나 사회이슈에 대한 참여등이 일종의 발화점 역활을 했기 때문이다. 쉬운 공유구조로 빠르게 확산되고 커뮤니티 혹은 기사화 되면서 진폭을 넓혀 나간다.

사실 이전에 언론사들의 포지션이다. 그들은 취재를 통해 새로운 이슈와 사건을 밝혀내고, 그 기사가 발화점이 되어 확산되고 진폭이 커져간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가 그 발화점이 된 듯 하다.

누군가의 청원은 그 지인에게 카카오톡 메세지, 트위터 트윗으로 전파되며, 이들은 커뮤니티에 이슈글로 등극하며, 다시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의 이용자들을 모은다. 이 이용자들은 청원내에서 논쟁하며 또다시 이 청원내용을 전파한다. 이런 전파 구조에서 어느덧 언론사들은 이슈 따라가기로 기사를 양산하며, 기사 댓글이라는 공간으로까지 확전의 길을 걷는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이 온라인 이슈의 생산지로, 확산지로, 종착지로 모든 이니셔티브를 장악해 버린 형국이다.

즉, 이렇게 말 할 수 있다.

청와대 청원을 때려라! 그러면 소셜 미디어, 커뮤니티, 뉴스 모든 매체가 공명하리라!

 

 

7화)복제인간을 보고 비정규직이 떠올랐다

복제인간은 SF 영화, 소설의 단골 주제입니다. 그러나 복제인간을 정말 우리 옆에서 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복제인간이 인간이냐?” “내가 둘이라면 세금도 두 배로 내야하나?” “복제인간은 대체 왜 만드는거냐?” “복제인간은 왜 자꾸 자기 원본을 찾으러하나” “복제인간을 보니 정규직 자격을 얻지 못한 비정규직이 떠 올랐다” 등등 이문동 아재들의 SF 팟캐의 전공인 아무말 대잔치를 벌였습니다.

얼마 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스포일러가 곳곳에 펼쳐지는 팟캐를 들어보시지요

<팟빵 바로가기>

http://www.podbbang.com/ch/13632?e=22465492

 

<플레어이로 듣기>

 

 

<같이보시면 좋은 영화>

 

동네에서 꿈꾸는 미디어] 동네여성들의 이야기 미디어로 담아보자 part1

동네에서 미디어로 활동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들 담아봅니다.

 

 

뉴스유통 이야기 – 비겁한 변명입니다.

최근, 네이버는 뉴스배열 조작에 대한 사과와 함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바로가기

요약하자면, 기사배열의 중림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기사배열 이력을 공개하고 뉴스편집 자문위원회를 운영하겠다 내용과 함께 사람이 편집하는 영역을 줄이고 그 알고리즘을 공개, 뉴스유통책임제 이행,  기사배열 전문성과 윤리의식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에대해 반발하는 측은 왜 포털이 뉴스를 유통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의문점을 제기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포털은 뉴스배열을 통해 미디어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일반적으로 미디어가 짊어지는 책임은 없는 묘한 구조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 게다.

그럼 한가지, 포털은 어떻게 뉴스를 유통하게 되었나?

포털사이트의 뉴스유통

네이버 뉴스섹션

초창기 우리나라 인터넷의 가장 큰 문제는 “한글로 된 문서가 없다”라는 점이었다. 한글로 된 html 문서가 없으니, 무언가 새로운 기술도, 서비스 활성화도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의미있는 서비스라고는 이메일류 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초고속망 투자 등으로 인해 인터넷의 신사업은 어느덧 닷컴버블이란 이름으로 장미빛 꿈을 꾸게 해주었고, 당연히 언론사도 자신들의 뉴스를 홈페이지등을 통해 게시하게 되었다.

쓸만한 컨텐츠에 목말라 있던 포털사에게는 이런 뉴스는 가뭄의 단비와 같았고, 그들은 일정금액을 지불하고 포털에서 뉴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상황역전

초창기 인터넷에서는 지면에 비해 온라인에서 거둘수 있는 수입이 별반 없었고, 고객의 요구에 따라 뉴스를 노출할 수 밖에 없었다. 공급자가 극히 적은 상황에서는 공급자의 협상력이 높은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포털에서 뉴스를 보는 사용자층이 늘어나고, 인터넷 언론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설립되기 시작하자, 오히려 언론사의 협상력은 약화되었다.

그 극단의 사례가 파란의 스포츠 뉴스 독점사건이다.

파란은 한미르와 하이텔등 자사의 서비스를 합쳐 파란이라는 포털사이트를 런칭하게 된다. 포털사이트중 후발주자에 속했던 파란은 독점적 컨텐츠 만이 서비스를 알릴 수 있는 엣지라고 판단하고, 주요 스포츠 신문과 독점계약을 맺게 된다. 당시의 기억에도 이 업계 사람들은 겨우 1억에 다른 수익을 포기하는 스포츠 신문을 이해할 수 없었고, 독점한다고 그 컨텐츠의 희소성이 유지될 거라 판단하는 파란의 어리석음에 코웃음 쳤던 기억이 있다.

당연하게 온라인 중심의 경제미디어등에서 연예 및 스포츠 매체를 창간하고 이들의 뉴스를 스포츠 신문이 빠진 무주공산 네이버에 공급하게 된다.

참고로 그 즈음 네이버는 UV PV에서 다음을 넘어서 명실상부한 국내 1위 포털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도입한 검색광고 모델은 대박을 치게 된다.

모바일 시대의 데자뷰

네이버 모바일에서도 언론사별 뉴스를 제공

2010년 아이폰 출시 이후 본격적인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자, PC에서의 뉴스유통과 모바일에서 뉴스유통은 다르므로, 언론사들은 모바일에서는 적어도 포텉에 뉴스공급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단순히 주장에 그쳤을 뿐이다.

왜냐면 죄수의 딜레마처럼 몇몇 매체가 빠진다고 해도 다른 매체가 그 간극을 매꿀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덧 늘어난 뉴스공급자들은 비슷한 수준의 컨텐츠를 비슷하게 자기복제하는 수준밖에는 안되었기때문이다.

 

포털로 간 뉴스는 어떻게 유통되는가

포털의 뉴스제휴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뉴스 미디어 제휴과 검색제휴

뉴스 미디어 제휴는 그들이 운영하는 뉴스 섹션에 컨텐츠를 공급할 수 있는 권한이다.

검색 제휴는 그들의 검색에 기사가 걸릴 수 있도록 하는 제휴이다.

물론 검색제휴를 하지 않더라도, 뉴스는 수집되거 검색이 되겠지만 네이버 검색의 “뉴스”카테고리에 자신들의 뉴스를 유통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검색제휴를 거쳐야 한다.

여기서 질문은, “뉴스”검색에 뉴스를 유통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이 네이버에게 있다는 것이다. 검색서비스는 일종의 공공성을 가져야 하므로, 왜 그걸 네이버가 결정하냐는 의문을 가질수 있지 않을까?

 

결론은… 네이버의 뉴스유통은 막을 수 없다.

네이버의 뉴스 유통을 막을 방법이 없다. 국가가 나서서 포털의 뉴스유통을 막는다 하더라도, 뉴스란 정보는 다른 형태로 포털사이트에 유통될 수 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네이버의 변명, 사람손을 배제하고 최대한 공정하게 라는 뉴스 배열의 원칙은 오히려 미디어간의 레벨 차이를 희석시키게 될것이다. 조중동을 비롯한 종이신문에서 대형 매체들이 오히려 포털에서는 쪽도 못쓸 수도 있다는 거다.

그리고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은 언론사별로 생산하는 “뉴스”라는 컨텐츠가 언론사마다 차별화된게 아니란 점에 있으며, 기간 언론사들이 온라 인을 대해 왔던 자세 – 조그만 이익에 소탐대실 하는 – 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아무도 너에게 관심이 없어

아니야. 우리에게 정부나 법률 같은 게 없긴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우라스에서도 법률이나 정부가 아이디어를 통제하지는 않았어. 그랬다면 어떻게 오도가 이론을 세웠겠어? 어떻게 오도니안 주의가 세계적인 운동이 되었겠어? 아키스트들은 힘으로 종지부를 찍으려다 실패했지. 억압해 눌러서 아이디어를 으깰 수는 없어. 무시함으로써만 그럴 수 있지. 생각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그리고 우리 사회가 하고 있는 짓이 바로 그거란 말이야! 사불은 가능할 때는 널 이용하다가 그게 불가능해지자 출판도, 가르치는 일도, 심지어는 작업까지 못하게 하지. 맞지? 다시 말해 그는 네게 휘두를 권력을 가지고 있는 거야. 그 힘을 어디서 얻지? 권위를 부여받은 건 아니지. 그런 건 없으니까. 지적으로 탁월해서도 아니야. 그자에겐 지적 탁월함이 없으니. 사불은 평균적인 인간 정신에 내재한 비겁함에서 힘을 얻는 거야. 공공의 견해 말이야! 그게 그가 일부를 이루면서 어떻게 사용할지 아는 권력 구조야. 개인의 정신을 억압함으로써 오도니안 사회를 지배하는. 공인된 적도 없고 용인될 수도 없는 정부.

Ursula K. Le Guin, 이수현 옮김(2002), <빼앗긴 자들>, 서울: 황금가지. 190쪽.

어슐러 르 귄의 <빼앗긴 자들>는 두 행성을 배경으로 한다. 지구를 은유한 행성인 우라스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혁명을 통해 여기를 벗어나 위성인 아나레스로 이주한 이들이 만든 공유재산에 기초한 아나키즘의 사회가 그것이다.

아나레스에는 사적 소유를 허용하지 않고 정부나 법률 같은 억압적 국가기구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곳에서도 다른 형태의 권력이 존재한다. 금지나 처벌과 같은 규제가 아니다. 그 권력의 작동방식은 ‘무시’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가 국가기구를 통한 억압으로 새로운 변화와 혁명을 억누를 수 있다. 아나키즘의 사회에서는 모든 사유와 표현을 허용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새롭고 도발적인 것들을 무시함으로써 변화를 배제한다. 새로움에 대한 무시는 “평균적인 인간 정신에 내재한 비겁함”, 르 귄의 표현을 빌면 “공공의 견해”에 기초한다.

체제의 기초가 사적 소유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곳에서든 공공의 견해,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는 의견”을 추정하고 이를 행위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자신이 아닌 모든 타자의 사유와 의견을 하나로 묶어 일관성을 찾아내는 기관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공공의 견해를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기관이나 체제는 어떤 사회든 존재한다. 대다수의 사회구성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정보를 취합하여 보관하고 정리하는 기관 또는 집단이 그렇다.

이들이 정말로 그렇게 방대한 정보를 보유하고 가공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한 자격을 갖춘 기관과 집단이 존재한다는 그 사실만으로 이들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공의 견해’가 어디까지인지 한계를 정한다. 이런 한계를 벗어난 사유와 행위는 즉시 무시된다. 억압이 아니라 “아무도 너에게 관심이 없어”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전달된다. 권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이런 공공의 견해에 대한 판정은 “외부에서 보기에”, “관례적으로”라는 구절로 들려왔다. 대통령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었어도, 구체제의 부역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도, 예전과 다르지 않은 무시가 곳곳에서 확인된다. 르 귄의 말하는 무시하는 권력. 그것은 바로 2017년 한국에서도 존재하는 관료제다.

[동네에서 꿈꾸는 미디어] 대책없는 재개발 미디어로 정리하자 part2

● 그러면 미디어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 사라질 동네의 기록을 남기자
* 이문동과 같이 대학가 인근의 동네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오래된 장소, 건물, 공간이 존재.
* 동네에 한동안 살다가 떠난 사람들의 반응 또한 좋기 때문에 재개발 구역별로 남겨야 할 장소와 공간의 사진을 올리고 여기에 사람들이 추억을 남길 수 있는 미디어
* 유튜브의 슬라이드쇼를 통해 콘텐츠를 만들 수도 있음.

2. 세입자들에게 재개발 정보를 공유하는 미디어
* 이문휘경지역 재개발 구역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구청에 요청. 예를 들어 1인 가구 세입자의 수, 집주인이 거주 중인 가구와 그렇지 않은 가구의 비율. 연령대별 가구 구성등의 정보 필요.
* 서울시 및 재개발 절차에 대한 정보를 <두꺼비하우징>, <나눔과 미래> 등 기존 활동단체들을 통해 확보.
* 재개발 정보를 블로그와 같은 플랫폼에 콘텐츠로 쌓으면서 문자 메시지 등과 같은 메신저 서비스로 유료 구독한 세입자들에게 푸쉬 방식으로 제공

3. 세입자들의 권리찾기, 미디어로 해보자.
* 이주비용도 못받고 떠나는 세입자, 자영업자에게 권리금을 달라는 집주인 등 만연한 비리와 부패를 없애기 위한 재개발 지역 세입자 권리 교육과 상담의 미디어가 필요.
* 팟캐스트를 개설하여 이문휘경 재개발 상담 시간을 만드는 것도 방법. 담당 공무원을 불러보자는 제안.
* 더 구체적인 내용은 기밀을 유지해야 하므로 기록하지 않음.

[동네에서 꿈꾸는 미디어] 대책없는 재개발 미디어로 정리하자 part1

● 오고간 이야기

1. 재개발은 복잡해
* 집주인, 그것도 재개발 지역을 이미 떠난 집주인들만이 모여서 결정하는 재개발 조합의 결정과정, 일반적인 재개발 절차 등 모든 정보는 세입자들에게 막혀있는 상태.
* 재개발, 재건축, 뉴타운, 도시재생 등 복잡하기만한 정보와 내용을 바쁜 생활인들이 알기란 사실상 불가능.

2.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재개발
* 워낙 큰 돈이 오가고, 작은 집이라도 가진 서민들에게 재개발은 인생에 한 번 밖에 없는 기회.
* 정치인들도 선거에서 재개발에 대한 정책이나 공약을 내놓지 못함. 찬성이나 반대 무엇을 해도 반발이 있어서 당선에 불리하기 때문. 과거 한나라당 정치인들이 재개발과 뉴타운을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재선에 떨어지는 ‘재개발의 역습’을 당하기도 함

3. 권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세입자
* 재개발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는 세입자들은 법적으로 보장된 이주비용도 못받고 그냥 떠나는 경우가 많음.
* 특히 학생들이 많은 재개발 지역은 임대계약 때 재개발시 집을 비운다는 ‘각서’를 쓰게하여 아무런 권리가 없는 것처럼 기만. 이렇게 절약한 비용은 집주인들의 재개발 조합에서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