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변의 피크닉>: 테크놀로지, 국가, 계급에 대한 우화

아르카디 스트루가츠키, 보리스 스투르가츠키, 이보석 옮김, <노변의 피크닉>, 현대문학사, 2017.

원작 출판 연도(소비에트연방) 1972. 검열본

검열본이 아닌 원본 복원 출간 보리스 스투르가츠키, 회상록 <지난 일들에 대하여>, 2003.(2012년 시카고리뷰프레스 영역본 발간)

외계인이 갑자기 지구에 잠시 왔다 떠났다. 지구의 어느 누구도 이들이 온 목적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구인들을 더욱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외계인들이 들렸던 여섯 곳에 남은 흔적들이었다. 그 ‘구역’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외계 물체들이 나뒹굴었고, 구역 전체에는 이해 할 수 없는 중력과 대기 현상들이 지속되었다.

이 구역의 외계 물체들을 대하는 지구인들의 태도와 목적은 너무도 달랐다. 과학자들에게는 현 단계 과학의 한계와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올 사건으로, 군대나 ‘국제외계문제연구소’와 같은 정부에게는 신기술 개발과 무기에 활용할 자원으로 여겨졌다. 이들만이 아니었다. 국가가 군대를 동원하여 폐쇄한 이 구역에 잠입하여 훔친 외계 물체를 암거래 시장에서 거래하는 이들, ‘스토커’(stalker)가 등장했다. 이 소설은 이렇게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구역과 외계 물체를 두고 벌이는 다툼과 갈등, 서로 다른 욕망의 표출과 붕괴를 그려내고 있다. 아마도 외계인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몇 안 되는 SF소설 중 하나일 것이다.

1972년, 이 소설이 전례 없는 정부의 검열을 거쳐 겨우 초판이 출간되었던 때는 미소 냉전시대의 테크놀로지 전쟁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특히 위성과 로켓, 그리고 달착륙으로 대표되는 ‘스타워즈’가 그 서막을 알렸던 때이기도 하다.

흔히 첨단 테크놀로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블랙박스’로 여겨진다. 냉전 시기, 표면상 우주 여행을 목표로 한다는 테크놀로지는 블랙박스였을 뿐 아니라 국가 관료에 의해 통제되는 접근 불가능한 ‘구역’이었다. 이러한 구역을 대하는 계급과 계층의 이해관계는 <노변의 피크닉>에서처럼 너무도 달랐다. 테크놀로지 개발의 핵심에 있는 이들은 순수한 과학의 열정만으로 움직인다는 자기 기만으로 냉전체제의 경쟁에 이용당할 뿐이었다. 테크놀로지 개발에 관심은 있었지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이들에게 이 기술은 ‘스토커’처럼 생계를 위한 기만과 협잡의 소재였다. 그러나 어떤 계급과 계층도, 심지어는 국가조차도 이러한 기술이 전 인류에 가져올 결과는 확정할 수 없었고, 장담할 수 없었다.

<노변의 피크닉>에 나오는 목적을 알 수 없는 외계인의 방문, 그리고 원리는 커녕 용도조차 알 수 없는 외계 물질은 냉전이라는 당대의 배경을 넘어 국가가 통제하는 테크놀로지 관료제의 본질을 보여주는 소재로 쓰였다. 주목할 부분은 이런 테크놀로지의 희생자들이다. 테크놀로지의 개발로 인해 이익을 얻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스토커들은 새롭고 알 수 없는 테크놀로지를 자신의 생계 수단으로 삼지만, 그 생계 수단은 자신들의 삶을 갉아먹는 심연일 뿐이었다.

이 소설이 1972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넘어 디지털과 네트워크,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오늘날에도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은 테크놀로지, 국가, 그리고 계급에 대한 우화로서일 것이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의 잠재성은 어떻게 한국에서 표출되고 있는가. 새로운 시장에 대한 가능성으로 투자를 요구하는 과학자와 기업인들, 화폐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국가 관료들, 그리고 블록체인에 대한 어떤 이해도 없이 오직 이를 소액의 자산을 불릴 투기판으로 보는 사람들에게서 1972년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비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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