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변의 피크닉>: 테크놀로지, 국가, 계급에 대한 우화

아르카디 스트루가츠키, 보리스 스투르가츠키, 이보석 옮김, <노변의 피크닉>, 현대문학사, 2017.

원작 출판 연도(소비에트연방) 1972. 검열본

검열본이 아닌 원본 복원 출간 보리스 스투르가츠키, 회상록 <지난 일들에 대하여>, 2003.(2012년 시카고리뷰프레스 영역본 발간)

외계인이 갑자기 지구에 잠시 왔다 떠났다. 지구의 어느 누구도 이들이 온 목적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구인들을 더욱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외계인들이 들렸던 여섯 곳에 남은 흔적들이었다. 그 ‘구역’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외계 물체들이 나뒹굴었고, 구역 전체에는 이해 할 수 없는 중력과 대기 현상들이 지속되었다.

이 구역의 외계 물체들을 대하는 지구인들의 태도와 목적은 너무도 달랐다. 과학자들에게는 현 단계 과학의 한계와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올 사건으로, 군대나 ‘국제외계문제연구소’와 같은 정부에게는 신기술 개발과 무기에 활용할 자원으로 여겨졌다. 이들만이 아니었다. 국가가 군대를 동원하여 폐쇄한 이 구역에 잠입하여 훔친 외계 물체를 암거래 시장에서 거래하는 이들, ‘스토커’(stalker)가 등장했다. 이 소설은 이렇게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구역과 외계 물체를 두고 벌이는 다툼과 갈등, 서로 다른 욕망의 표출과 붕괴를 그려내고 있다. 아마도 외계인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몇 안 되는 SF소설 중 하나일 것이다.

1972년, 이 소설이 전례 없는 정부의 검열을 거쳐 겨우 초판이 출간되었던 때는 미소 냉전시대의 테크놀로지 전쟁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특히 위성과 로켓, 그리고 달착륙으로 대표되는 ‘스타워즈’가 그 서막을 알렸던 때이기도 하다.

흔히 첨단 테크놀로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블랙박스’로 여겨진다. 냉전 시기, 표면상 우주 여행을 목표로 한다는 테크놀로지는 블랙박스였을 뿐 아니라 국가 관료에 의해 통제되는 접근 불가능한 ‘구역’이었다. 이러한 구역을 대하는 계급과 계층의 이해관계는 <노변의 피크닉>에서처럼 너무도 달랐다. 테크놀로지 개발의 핵심에 있는 이들은 순수한 과학의 열정만으로 움직인다는 자기 기만으로 냉전체제의 경쟁에 이용당할 뿐이었다. 테크놀로지 개발에 관심은 있었지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이들에게 이 기술은 ‘스토커’처럼 생계를 위한 기만과 협잡의 소재였다. 그러나 어떤 계급과 계층도, 심지어는 국가조차도 이러한 기술이 전 인류에 가져올 결과는 확정할 수 없었고, 장담할 수 없었다.

<노변의 피크닉>에 나오는 목적을 알 수 없는 외계인의 방문, 그리고 원리는 커녕 용도조차 알 수 없는 외계 물질은 냉전이라는 당대의 배경을 넘어 국가가 통제하는 테크놀로지 관료제의 본질을 보여주는 소재로 쓰였다. 주목할 부분은 이런 테크놀로지의 희생자들이다. 테크놀로지의 개발로 인해 이익을 얻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스토커들은 새롭고 알 수 없는 테크놀로지를 자신의 생계 수단으로 삼지만, 그 생계 수단은 자신들의 삶을 갉아먹는 심연일 뿐이었다.

이 소설이 1972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넘어 디지털과 네트워크,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오늘날에도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은 테크놀로지, 국가, 그리고 계급에 대한 우화로서일 것이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의 잠재성은 어떻게 한국에서 표출되고 있는가. 새로운 시장에 대한 가능성으로 투자를 요구하는 과학자와 기업인들, 화폐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국가 관료들, 그리고 블록체인에 대한 어떤 이해도 없이 오직 이를 소액의 자산을 불릴 투기판으로 보는 사람들에게서 1972년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비유인가.

 

아무도 너에게 관심이 없어

아니야. 우리에게 정부나 법률 같은 게 없긴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우라스에서도 법률이나 정부가 아이디어를 통제하지는 않았어. 그랬다면 어떻게 오도가 이론을 세웠겠어? 어떻게 오도니안 주의가 세계적인 운동이 되었겠어? 아키스트들은 힘으로 종지부를 찍으려다 실패했지. 억압해 눌러서 아이디어를 으깰 수는 없어. 무시함으로써만 그럴 수 있지. 생각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그리고 우리 사회가 하고 있는 짓이 바로 그거란 말이야! 사불은 가능할 때는 널 이용하다가 그게 불가능해지자 출판도, 가르치는 일도, 심지어는 작업까지 못하게 하지. 맞지? 다시 말해 그는 네게 휘두를 권력을 가지고 있는 거야. 그 힘을 어디서 얻지? 권위를 부여받은 건 아니지. 그런 건 없으니까. 지적으로 탁월해서도 아니야. 그자에겐 지적 탁월함이 없으니. 사불은 평균적인 인간 정신에 내재한 비겁함에서 힘을 얻는 거야. 공공의 견해 말이야! 그게 그가 일부를 이루면서 어떻게 사용할지 아는 권력 구조야. 개인의 정신을 억압함으로써 오도니안 사회를 지배하는. 공인된 적도 없고 용인될 수도 없는 정부.

Ursula K. Le Guin, 이수현 옮김(2002), <빼앗긴 자들>, 서울: 황금가지. 190쪽.

어슐러 르 귄의 <빼앗긴 자들>는 두 행성을 배경으로 한다. 지구를 은유한 행성인 우라스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혁명을 통해 여기를 벗어나 위성인 아나레스로 이주한 이들이 만든 공유재산에 기초한 아나키즘의 사회가 그것이다.

아나레스에는 사적 소유를 허용하지 않고 정부나 법률 같은 억압적 국가기구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곳에서도 다른 형태의 권력이 존재한다. 금지나 처벌과 같은 규제가 아니다. 그 권력의 작동방식은 ‘무시’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가 국가기구를 통한 억압으로 새로운 변화와 혁명을 억누를 수 있다. 아나키즘의 사회에서는 모든 사유와 표현을 허용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새롭고 도발적인 것들을 무시함으로써 변화를 배제한다. 새로움에 대한 무시는 “평균적인 인간 정신에 내재한 비겁함”, 르 귄의 표현을 빌면 “공공의 견해”에 기초한다.

체제의 기초가 사적 소유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곳에서든 공공의 견해,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는 의견”을 추정하고 이를 행위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자신이 아닌 모든 타자의 사유와 의견을 하나로 묶어 일관성을 찾아내는 기관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공공의 견해를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기관이나 체제는 어떤 사회든 존재한다. 대다수의 사회구성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정보를 취합하여 보관하고 정리하는 기관 또는 집단이 그렇다.

이들이 정말로 그렇게 방대한 정보를 보유하고 가공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한 자격을 갖춘 기관과 집단이 존재한다는 그 사실만으로 이들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공의 견해’가 어디까지인지 한계를 정한다. 이런 한계를 벗어난 사유와 행위는 즉시 무시된다. 억압이 아니라 “아무도 너에게 관심이 없어”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전달된다. 권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이런 공공의 견해에 대한 판정은 “외부에서 보기에”, “관례적으로”라는 구절로 들려왔다. 대통령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었어도, 구체제의 부역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도, 예전과 다르지 않은 무시가 곳곳에서 확인된다. 르 귄의 말하는 무시하는 권력. 그것은 바로 2017년 한국에서도 존재하는 관료제다.

아직도 셜록 홈즈를 좋아하시나요?

이제는 조금 시들해 졌지만 최근까지 이른바 ‘미드’ 중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장르는 단연 추리물이었다. 두 편의 스핀오프를 탄생시킨 <CSI: Las Vegas>를 시작으로 <NCIS>, <성범죄수사대: SVU>, <크리미널 마인드> 등이 시즌을 거듭하며 인기를 끌었고, 의학을 소재로 하면서도 추리물의 형식을 띤 <하우스> 역시 상당한 고정팬들을 확보했다. 이런 추리물의 기원은추리소설이지만, 영화, 드라마 등 더 많은 대중문화 장르로 눈을 돌려보면 추리물은 다양한 “범죄물”로 각색되고 확장되어 왔다. 범죄소설 장르가 대중문화 역사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시기는 서양의 경우 1930년대에서 1950년대 사이,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중요한 분기점을 이룬다. 당시 세계 도처에서 주둔 중이던 미군들을 위해 미국의 출판사들은 저가의 대량 출판용으로 염가본(paperback)이나 문고판(pocketbook)을 내놓았다. 전시용이기는 했지만 이런 출판방식과 유통경로는 미국 국내의 시장 규모에 미군 주둔지 인근 시장이 또한 가세함으로써 상당한 변화를 일으켰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한국에서도 상당한 팬을 확보하고 있는 애거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였다.

미스터리로서의 자본주의

하지만 범죄소설의 인기를 이런 출판시장의 변화만으로 보기는 힘들다. “인류의 두 차례 자살기도”라고 평가받는 양차 대전 사이에 터졌던 1929년 대공황이 대중들에게 가져온 심리적 충격은 상당했다. 주식시장의 폭락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유발된 가공할 인플레이션과 연이은 실업자들의 행렬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위태로운지 알려주었다. 대공황에이어서 발발한 세계대전은 대중들에게 자본주의를 교과서에서 나오는 수요/공급 법칙과 같은이념이 아닌, 삶의 한 방식으로 마주하게 만들었다. 정확한 원인을 이해하기 힘든 대공황, 그리고 적군/아군, 선/악의 구분조차 혼란스럽게 만든 전쟁이란 대중들에게는 목숨을 건 모험이자 불확실성으로 점철된 미스터리였던 셈이다. 이런 심리적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일상의 문화에서 찾으려 했던 돌파구 중 하나가 바로 범죄소설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대공황과 전쟁은 극히 예외적인 사태가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삶의 방식이 그 본질을 드러낸 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화폐와 교환되는 임금노동과 철저한 시공간상의 분업화에 토대를 둔 자본주의의 확대란, 공동체를 이루고 살던 사람들이 서로 떨어져 보이지 않은 촘촘한 사회적 관계의 망에 놓여짐을 뜻한다. 게다가 그 사회적 관계는 화폐와 상품 같은 물건들에 의해 맺어지기 때문에 공황이라는 자본주의의 위기는 그 범인을 찾을 수 없는 미스터리와도 같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범죄소설은 작가와 대중이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당대 자본의 축적방식과 그 활동 반경을 어느 정도 반영하게 된다. 물론 이런 반영에는 범죄소설이 다양한 대중문화의 범죄물로 확대될 때, 그 내용 뿐 아니라 독자와 작가들 모두의 변화 또한 포함하게 된다.

합리적 개인의 추리력: 셜록 홈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표적인 탐정인 셜록 홈즈(Sherlock Holmes)가 탄생된 시기는 비교적 범죄소설의 초창기라 볼 수 있다. 대개 문학평론가들은 최초의 탐정으로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en Poe)의 소설 <모르그가의 살인>에 등장한 뒤팽(Auguste Dupin)을 꼽는다. 한 정치경제학자의 구분에 따르면 뒤팽과 셜록 홈즈의 활동 배경이 되었던 시대는 “경쟁 자본주의의 시기”였다. 대략 18세기 말에서 19세기 말까지로 구분되는 이때는 지금과 달리 주로 실이나 옷감과 같은 소비재 부문에 임노동과 기계가 사용되었다. 이런 까닭에 자본가들은 막대한 투자없이 비교적 소규모 자본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고, 시장 독과점이란 불가능할 것이라 믿었다. 자본주의의 영원한 이상향인 합리적 개인의 올바른 판단이 사회 전체에 부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합리성, 따라서 누구나 열심히 일한다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완전경쟁에의 믿음이 만연했던 시기였던 것이다. “합리적인 경제행위를 계획하고 수행하는 개인”에 대한 소망은 바로 뒤팽이나 홈즈의 캐릭터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초창기 탐정의 무기란 오직 추리능력, 그것도 증거에 입각한 귀납적(deductive) 추론 방식 뿐 이었다. 에드가 앨런 포는 탐정의 자격으로 분석력과 그에 동반되는 상상력을 거론했고, 홈즈를 탄생시킨 코난 도일(Conan Doyle)은 시리즈 곳곳에서 증거에 입각한 가설 수립과 그것의 검증 과정이라는 추리론을 설파했다. 이런 합리성에 대한 강조는 다시 홈즈와 뒤팽 같이 사건을 해결하는 한 개인, 즉 완전경쟁의 행위자로서 조직이나 기업이 아닌 자본가 개인에 대한 숭앙을 반영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탐정들의 활동 반경이 당시 경쟁 자본주의 시장의 범위와 겹쳐졌다는 사실이다. 최초의 탐정인 뒤팽은 “모더니티의 수도”였던 파리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런던 시민인 홈즈 또한 가장 멀리 간 곳은 그의 숙적인 모리어티 교수와 폭포에서 함께 몸을 던졌던 스위스였다. 당대에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의 시장 범위가 유럽에만 국한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탐정의 활동범위는 바로 자본의 활동 범위였던 셈이다.

추리력을 누른 조직과 기술의 힘

혈혈단신 오직 합리적 추리력만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초기 탐정의 캐릭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상당한 변화를 겪는다. 이 시기에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범죄물은 단연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이 1953년 <카지노 로얄>로 데뷔시킨 007 시리즈였다. 007의 제임스 본드는 사건의 해결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홈즈나 뒤팽과 같은 원조들과 분명히 달랐다. 그는 논리정연하고 빈틈없는 추리력보다 MI6와 같은 국제적 기관의 기술적 지원을 받는 전형적인 “행동파”였다. 사건이 없을 때는 아편에 빠져있던 홈즈나 칩거와 산책만을 반복했던 뒤팽 같이 초창기 탐정들이 “백수”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런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제임스 본드는 정보국 요원이라는 전문직이었으며 민첩함, 성적 매력, 호화로운 삶, 그리고 신체적 완벽함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새로운 탐정의 유형을 대표하게 되었다. 이 새로운 유형의 탐정들이 보여준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바로 활동 반경에 있다. 은밀하지만 거대한 국가 조직과 자본, 그리고 기술력에 바탕을 둔 제임스 본드는 유럽만이 활동 무대였던 원조 탐정들과 달리 일본까지 진출할 정도로 전 세계를 무대로 삼았으며, 급기야 <문레이커>에서는 달까지 그 활동반경을 넓혔다. 1950년대 이후의 모든 범죄물에 등장한 주인공들이 제임스 본드의 아류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제임스 본드로 창조된 새로운 탐정의 유형들 역시 초창기 탐정들이 경쟁 자본주의의 특성과 그에 대한 대중의 믿음을 반영했듯 유사한 경로를 밟았다. 제임스 본드라는 요원의 능력이 개인의 추리력이 아니라 조직과 기술에서 비롯된다는 점은 경쟁 자본주의와 비교되는 1950년대 이후 포드주의의 특징을 상당부분 반영하고 있다. 당시는 자본주의 초창기와 달리 거의 모든 산업 부문에 자동화 기계가 도입된 때였다. 이는 합리적 경제행위를 계획하고 수행하는 개인들 사이의 완전경쟁이라는 믿음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시대가 왔음을 뜻했다. 과거와 달리 자본가 개인이 아니라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라는 조직이 자본주의의 주체가 되었으며, 이는 국가를 넘나드는 다국적 기업의 출현으로 본격화되었다. 자본의 이런 변화는 제임스 본드와 같은 새로운 탐정 유형에 영향을 미쳤다. 자본가 개인의 합리성에 대한 믿음보다 기업으로서의 자본이 갖춘 조직과 기술력에 대한 숭앙은 곧 탐정들로 하여금 사유보다 행위로, 그것도 조직과 기술력이 뒷받침된 전문적인 행위를 주된 무기로 삼게 했다. 여기에 다국적 기업의 형태를 갖춘 자본의 전 세계적 활동무대가 범죄물의 무대로 옮겨온 것도 단순한 우연은 아니다.

탐정을 향한 욕망, 범죄를 향한 공포

이 시기 범죄물의 변화는 자본의 변화만을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자본의 변화란 곧 그 자본을 창출하는 임노동자들의 변화를 또한 의미하기 때문이다. 1950년대 이후 서구 자본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은 컨베이어벨트로 대표되는 대량생산 시스템의 도입과 함께 이뤄진 화이트 컬러, 즉 전문직들의 대거 등장이었다. 이들은 오늘날의 변호사나 의사와 같은 전문직과는 조금 달랐다.
도서관 사서, 교사, 카피라이터 등 이전까지는 독립 자영업자에 가까웠던 이들이 이 시기엔 자본에 고용된 노동자, 즉 임노동자 계급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더욱이 전문직하면 떠오르는 ‘정신노동’이란 단어가 무색하게 이들은 같은 일을 반복하는 지루한 일상 업무를 맡게 되었다. 지루한 노동으로의 변화는 전문직들로 하여금 범죄물에 등장하는 ‘전문직’ 탐정에서 자신들의 업무에 대한 자부심을 찾도록 했다. 기본적으로 현실에서의 도피라는 기능을 수행하는 범죄물에 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전문 지식이 도입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제임스 본드가 보여준 능란한 신무기 사용 기술은 로빈 쿡(Robin Cook)의 스릴러물에 등장하는 의학 지식, <분노의 질주>(the fast and the furious)에서의 자동차 전문기술, 나아가 초창기 탐정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마스터 키튼>에서의 고고학 지식으로까지 전문직의 계보로 이어졌다. 지루한 노동이 주는 박탈감을 당대의 독자들이 범죄물 속 탐정의 전문지식에서 해결하려 했다면, 더 이상 합리적 사유가 필요 없는 반복된 행위에 대한 염증은 범죄물 속 범죄의 동기나 배경으로 투영되었다. 개인의 합리성이 사라지고 행위만이 강조되는 범죄물에서 범죄의 동기 역시 우발적이거나 그 대상이 불특정한 ‘묻지마’ 살인, 그리고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이코 패스’로 설정된 것이다. 범죄물의 부흥기였던 1950년대에 이후의 작품들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 탐정과 범죄의 유형이 창출된 배경에는 이렇게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있다. 노동자 대중들의 자본에 대한 무의식적인 숭앙, 그럼에도 전문직으로서 느끼는 노동과정 속에서의 박탈감, 그리고 그런 박탈감을 잊게 해줄 욕망이 서로 겹쳐진 결과가 바로 범죄물의 부흥을 낳았던 셈이다.

홈즈와 테크놀로지의 만남, CSI

정확한 시기 구분은 힘들지만 제임스 본드로 대표되던 탐정물에 다시 한 번 변화가 온 시기는 1990년대 이후로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2000년부터 방송되었고 한국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미드 <CSI: Las Vegas>를 보자. 이 범죄물에서는 이전 시기와 달리 특정한 개인이 탐정의 역할을 맡지 않는다. 그리섬 반장을 중심으로 하는 법의학팀이 그 역할을 맡으며 사건 현장의 미세한 정보까지 채취하고 분석할 수 있는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바로 이들의 무기가 된다. <CSI> 이후의 다른 범죄물 시리즈들도 약간의 변형을 거치면서 유사한 캐릭터와 범죄 해결방식을 반복하고 있다. 최근의 범죄물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팀장을 맡은 이들이 발휘하는 초창기 탐정, 즉 셜록 홈즈와 같은 치밀한 추리력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홈즈와 같이 확대경 하나만 들고 다니지는 않으며, 제임스 본드처럼 놀라운 신기술로 무장한 무기를 휘두르는 행위로 사건을 해결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최근의 범죄물에서는 두 유형의 탐정들이 가진 특징들이 결합되고 있다. <CSI>가 전형적으로 보여주듯이 이들은 합리적 추리력, 가설을 세우고 증거물로 검증하는 추론방식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초창기 탐정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런 추리력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최첨단의 테크놀로지에 또한 의존하고 있다. 여기에 개인이 아닌 팀이 전면에 나선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자본주의 노동과정이 겪은 중요한 변화, 즉 위계적 노동조직의 질서가 아닌 업무별로 분화된 팀제가 노동자 대중에게 일상으로 다가왔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 앞선 두 유형의 탐정이 각각 경쟁 자본주의와 포드주의라는 자본주의의 달라진 축적방식을 반영했듯이, <CSI>로 대표되는 범죄물에서도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자본과 노동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셜록 홈즈를 향한 향수

범죄물이 오랫동안 대중문화에서 누려온 지속적인 인기는 단순히 독자들의 감성에서만 기인하지는 않는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작가와 감독, 그리고 독자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주된 삶의 방식, 즉 자본주의가 그 형태를 달리할 때마다 직간접적으로 이를 반영하고 투영해 왔다.
특히 노동자 대중은 때론 자신이 되고 싶은 자본가의 모습을 탐정에 투영하거나, 달라진 노동과정에서의 박탈감을 되찾으려 하기도 했고, 일상의 노동과정에서 느낀 지겨움을 범죄의 배경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대중문화의 특정한 장르가 불러오는 유행의 원인은 그래서 그 텍스트안에만 있지는 않다. 그 인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우리 삶의 방식을, 즉 그 속에서 누구나 느끼는 불안과 욕망, 그리고 희망을 꼼꼼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10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탐정의 대명사로 셜록 홈즈가 부동의 지위를 누리는 까닭은 어쩌면 이런 점에 있을 지도 모른다. 독점자본이 아직 굳건해지기 이전, 개인의 능력과 이성이 아직 자본력과 기술력에 억눌리지 않던 시절, 그리하여 완전경쟁이라는 자본주의의 신화가 여전히 가능하다고 믿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그것이다. 행여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꿈꾸고 있다고 해도 좋겠다. 그러나 이런 향수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게다가 오늘날 어느 누구도 겪어 보지 못했던 환상에 가까운 시절에 대한 향수이며 그렇기에 근 100여 년간을 이어온 자본주의의 부단한 변화에대한 지겨움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직도 셜록 홈즈를 좋아한다면 당신은 어떤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지.

Who’s afraid of Frankenstein? (3)

 

3. 현대의 프랑켄슈타인: 대중문화

언젠가 마르크스는 부르주아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프롤레타리아를 가리켜 “아무 것도 아닌 존재, 그러나 모든 것일 수밖에 없는 존재(I’m nothing, but I must be everything)”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가 독일 혁명의 유일한 주체로 당시 형성 중이었던 프롤레타리아를 지목한 것은 오직 그들만이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부정할 수 있는 계급이었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자본주의에서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자 계급을 형성하는 역사이자, 동시에 노동자라는 계급을 부정하려는 모순된 역사에 다름 아니다.

흥미롭게도 원작에서 ‘괴물’은 바로 이런 정체성의 부정을 시도한다. 괴물은 탄생 직후 자신의 흉측한 외모가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여겨지는지 뼈져리게 경험한다. 괴물이 외딴 시골집의 창고에서 혼자 언어를 배우고 글을 익혀 <실락원>, <플루타크 영웅전> 그리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는 광경은 차라리 애처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그러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거부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꿈꾸던 괴물이 유일한 친구라 여겼던 이들에게 내쫓긴 순간. 그는 자신의 창조자가 속한 족속 전체를 절멸시키리라 다짐하는 ‘괴물’의 정체성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린다.

셜리의 프랑켄슈타인 역시 20세기 대중문화 속 수많은 변종과 아종에서 이렇게 갇혀진 정체성만으로 재현되어 왔다. 당연히 이 재현의 핵심은 바로 괴물의 ‘외모’를 얼마나 끔찍하게 그려내는가에 있었다. 노동자들에게 바로 자신들이 공포스런 존재임을 잊게 하는데 이러한 시각적 재현이야 말로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1930년대 시작된 헐리우드의 프랑켄슈타인 시리즈의 흥행은 바로 이런 전도의 시작이 아닐런지. 이 때 괴물은 비로소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창조자의 이름을 얻고, 자신의 역사적 분신인 노동자 대중들에게 하나의 유희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더 이상 노동자들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아니며, 자신들이 19세기에 부르주아들을 떨게 만들었던 바로 그 공포였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원작 속 괴물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보여짐’(시각적 이미지)은 1930년대 이후 영상매체에서 현실이 되었다. 셜리가 기대했던 작품 전체의 구성이 주는 공포는 이제 단순한 몇 컷의 시각적 공포로 대체되었다. 어디선가 아도르노(Th. Adorno)가 ‘부분에 의한 전체성의 전복’이라고 통탄했던 ‘문화산업’의 악몽은 이렇게 나타났다.

1818년 이후 <프랑켄슈타인>이 거쳐온 변형과 전유의 역사는 하나의 부르주아 장르가 노동자 대중들이 즐기는 문화로 이입되는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자신이 만든 괴물에게서 느낀 공포는 이제 작가인 셜리의 몫일지도 모른다. 19세기 초의 한 소녀가 쓴 공포소설은 그 자체로 괴물이 되어 버렸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지난 180여년 동안 <프랑켄슈타인>은 대중문화 속에서 스스로 언어를 익히고 모습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이렇게 자란 프랑켄슈타인은 소설 속 자신을 만든 박사와 소설을 쓴 작가의 존재마저 잊혀지게 만들었다. 자신을 만든 주체를 잊게 하고 그 주체를 지배하는 상품의 속성이 오늘날 대중문화의 성격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더욱 강력한 대중문화의 힘은 자신이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대중들의 힘을 표상 뒤에 감추고 전도시키는 과정에 있다.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낸 부르주아의 공포가 노동자들의 힘이었다면, 노동자들에게 프랑켄슈타인은 결코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괴물을 보고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해야 할 이들은 흥행사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다. 만일 우리가 ‘괴물’ 프랑켄슈타인이라면, 누가 프랑켄슈타인을 두려워할 것인가.

Mary Shelley(1818/2003), 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 London: Penguin Books.

Hindle, M(2003), “Introduction” in 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 London: Penguin Books.

Moretti, Franco(1983), ‘Dialectic of Fear’, in Signs Taken for Wonders, London: Verso Editions and NLB.

Marcuse, H(1960), Reason and Revolution: Hegel and the Rise of Social Theory, Boston: Beacon Press.

Who’s afraid of Frankenstein? (2)

<1866년 영국의 한 카툰>

 

2. 19세기의 프랑켄슈타인: 노동자 대중이라는 괴물

작품에 나타난 박사와 괴물의 관계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있었지만 그 중 모레티(Franco Moretti)의 해석은 매우 흥미롭다. 그는 이 관계를 19세기 영국의 계급관계, 즉 ‘자본과 임노동의 관계’로 해석한다. 19세기 영국에서 노동자들(노동자 대중)은 자본가들에게 ‘괴물(monster)’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동시대의 엥겔스(F. Engels)가 <영국노동계급의 처지>에서 묘사했듯이 그들은 돼지와 함께 잠을 자고 한 벌의 옷으로 겨울을 나는 처참한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파업을 방해하는 자본가와 어용 노동자들에게 염산 테러까지도 불사하는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다. 셜리의 작품이 발표되고 오래지 않아 영국 보수파들은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은 모든 민주적, 진보적 요구의 주체들을 “역겨운 폭도들(revolting mobs)”로 몰아세운다. 이 때 그들에게 사용된 은유(metaphor)가 바로 “영혼 없는 육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Frakenstein monster)”이었다.

모레티가 지적한 이런 은유가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원작의 또 다른 부르주아적 전유라면, 여기서의 대립은 단지 외면적인 대립, 계급 갈등의 표면적인 투영에 그치고 만다. 도리어 작품 속 박사와 괴물의 적대는 더욱 복잡하다. 괴물을 만든 직후 사라진 박사의 가장 큰 죄악은 사실 자신이 만든 창조물의 존재를 망각하려 했다는 것이다. 2미터 40센티에 달하는 거구에 끔찍한 외모를 가진 그 괴물은 그 탄생의 순간에 그저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였을 뿐이다. 자신의 눈에 맺히는 상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그것을 가리키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복잡한 소리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르는 존재였다. 그런 ‘괴물’이 이후의 끔찍한 고독과 배신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저주하게 되었을 때 박사에 대한 복수가 시작된다. 괴물은 박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의 창조자인 바로 당신이 나를 끔찍히도 미워하고 멸시했소. 당신의 피조물인 나를 말이오. 당신과 나를 얽어맨 이 속박은 둘 중 하나가 사라져야만 풀릴 것이오.”(102)
이런 분노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두 계급의 적대로 읽어내기에 충분한 근거가 된다. 그러나 작품의 결말에서 괴물은 박사의 죽음을 앞에 두고 결국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음을 고백한다. 결국 박사와 괴물의 적대는 하나의 소멸이 다른 하나의 소멸로 이어지는 내적으로 연관된 적대이다. 자본은 임노동을 두려워할지 모르지만, 임노동의 소멸은 자본의 소멸을 의미한다. 물론 이런 식의 해석이 작가인 셜리의 의도와 부합할리는 없다. 그러나 자신들이 불러내어 마주한 대상에 대해 느끼는 공포는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말한 부르주아들의 공포, 곧 램프 속 요정을 불러내고 느끼는 두려움. 바로 그것이다.

과학의 정점에서 불러낸 괴물과 인류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생산력인 임노동은 박사와 부르주아 모두에게 두려움의 존재들이다. 19세기 에드가 알런 포(E. A. Poe)가 소설에서 그려낸 군중에 대한 두려움(군중 속의 남자)은 바로 이런 부르주아적 공포의 또 다른 표현이다. 비록 그녀의 부모가 급진적 사상가들이었다고 해도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셜리 역시 이런 부르주아적 공포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모레티가 프랑켄슈타인을 가리켜 “부르주아 문명화가 낳은 공포(the fear of bourgeois civilization)”라고 말한 것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것은 공포를 느끼는 주체가 박사와 작가임에도 정작 그 공포의 현실적 실체인 노동자들 또한 이런 공포에 동참해 왔다는 사실이다. 대중문화가 부르주아적인 것은 그 내용이 아니라 바로 이런 전도의 과정에 있다. 부르주아의 공포에 그 공포의 현실적 대상을 동참케 하는 것.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이 되고 20세기에 와선 아예 희화화되어 버린 이 역사적 과정이 20세기 대중문화의 전형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인가.